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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울에 얽힌 옛 이야기]뚝섬의 유래

크은맘 2013. 10. 21. 15:37

[서울에 얽힌 옛 이야기]뚝섬의 유래

 

글 신현배(시인, 아동문학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뚝섬은 1960년대에 경마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경마장은 오래 전에 과천으로 옮겨졌다. 또한 뚝섬은 배추밭으로 유명해서 서울에서는 '뚝섬 갈비를 뜯었다.'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여기서 갈비는 쇠갈비나 돼지갈비가 아니라 배추를 말한다. 뚝섬 갈비를 뜯었다는 것은 뚝섬의 명물인 배추로 만든 김치를 먹었다는 것이다.

뚝섬은 현재 서울 숲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오랜 옛날에는 '동교', '독도', '살곶이벌' 등으로 불리며 임금의 사냥터, 말을 먹이는 목장 등으로 이용되었다. 고려 시대에 뚝섬은 한양(서울)동쪽에 있는 벌판이라고 해서 '동교(東郊)'라고 불리었다. 이 지역에 고려 현종 때의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한양 부윤이 강감찬 장군에게 한양 근처에 호랑이들이 많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 때 강감찬은 한양 판관 벼슬에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닷새 안에 호랑이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하겠습니다."

강감찬은 한양 부윤에게 이렇게 장담하고 편지 한 통을 써서 아전에게 주며 말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북동에 나가 보아라. 바위에 앉은 늙은 스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너는 그 스님에게 이 편지를 전하고 스님을 데려오너라."

다음 날 아침, 아전은 강감찬이 시키는 대로 북동으로 갔다. 과연 늙은 스님이 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전은 스님에게 편지를 전해 주고는 강감찬에게 데려왔다.

강감찬은 한양 부윤이 있는 자리에서 스님에게 호통을 쳤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치느냐? 하늘이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 닷새 안에 여기를 떠나도록 하라. 만약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한양 부윤은 곁에서 듣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님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 스님이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라도 된단 말이냐?"

강감찬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호랑이 우두머리가 늙은 스님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지요."

강감찬은 스님에게 부탁했다.

"네 진짜 모습을 부윤 대감께 보여 드려라."

그러자 스님은 집채만한 호랑이로 변했다. 다음 날 아침, 강감찬은 아전을 불러 명령했다.

"동교에 좀 다녀오너라. 특별한 일이 생기면 내개 와서 보고하여라."

아전은 동교에 갔다가 오후에 강감찬에게 돌아왔다.

"그래, 특별한 일이 생겼느냐?"

"예, 집채만한 늙은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호랑이 수십 마리를 데리고 강을 건너갔습니다."

"수고했다. 호랑이 우두머리가 약속대로 동교를 떠났구나."

호랑이들이 사라지자 그 뒤부터는 동교에서 호랑이에 대한 피해가  한건도 없었다고 한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뚝섬은 임금의 사냥터로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대 태조 때부터 9대 성종 때까지 임금이 직접 와서 사냥을 한 것이 모두 151회나 되었다. 임금이 사냥을 나가거나 군대를 사열할 때는 그 표시로 독기(纛旗)를 세웠다고 한다. 독기는 큰 깃발을 뜻한다. 이곳에 임금이 자주 사냥을 나와서 독기를 세웠기 때문에 '독기를 세운 섬'이라고 해서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깃발의 이름이 '독'이 아니라 '뚝'이기 때문에 '뚝도', 또는 '뚝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뚝섬보다 먼저 불린 이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살곶이벌'이다. 이 이름이 생기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 이방원은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 없자 그는 배다른 형제인 방번, 방석 등을 죽이고 정종에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태조는 불같이 화를 냈다.

"임금의 자리가 욕심이 나서 동생들을 죽여? 천벌을 받을 놈이로구나. 방원이 이놈은 아들로 치지 않겠다."

태조는 이방원과 부자의 인연을 끊겠다며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어떻게든 아버지의 노여움을 풀어드려, 태조에게 임금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서울로 아버지를 모셔 오려고 함흥으로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태종을 미워하는 태조는 사신이 올 때마다 모두 죽여 버렸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말이 '함흥차사(咸興差使)'이다. 한번 가기만 하면 깜깜소식이라는 뜻으로,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않거나 소식이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이런 형편이니 더 이상 함흥에 사신을 보낼 수도 없었다.

이 때 박순이라는 사람이 사신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그는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부터 친한 친구였다. 박순은 함흥으로 갈 때 새끼 말과 어미 말을 끌고 갔다. 그리고는 태조의 집 근처에 새끼 말과 어미 말을 따로따로 매어 두고 태조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어미말을 애타게 찾는 새끼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박순은 태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어미가 그리워 저리 슬프게 우는데, 사람인들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전하의 명을 받들어 상왕 마마를 모시러 왔습니다."

박순은 태조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 뒤 태조는 무학대사의 간곡한 청으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부왕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이 때 하륜이라는 신하가 태종에게 말했다.

"상왕 마마가 성격이 워낙 불같은 분이라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환영 연회장에는 높은 기둥을 여러 개 세우고 차일을 치시기 바랍니다."

이에 태종은 하륜이 건의한 대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뚝섬의 환영 연회장에 나타난 태조는 태종의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활을 들어 태종을 향해 쏘았다. 태종은 기둥 뒤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화살은 기둥에 꽂혀 버렸다. 그래서 이 때부터 뚝섬은 화살이 날아와 꽂힌 곳이라고 해서 '살곶이벌'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던 병사들이 활솜씨를 겨루었다고 하여 '살곶이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출처 : 이만큼은 내 세상이며 내 공간
글쓴이 : 월홍낭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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